사회심리학자들은 종종 일상의 뻔한 것들만 과학적 탐구의 결과라고 제시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즉 그렇게 어렵게 연구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뻔한 것들이라는 것이다. 과학적 관찰에 의한 설명과 일상적인 설명은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가장 큰 차이는 그 성립과정의 차이이다. 사회심리학과 달리 상식은 비체계적인 관찰을 바탕으로 성립된다. 즉 관찰자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또는 관찰자 주위의 사람들의 행동을 바탕으로 상식을 만들어 낸다. 이 경우에 관찰자는 편파적인 표본을 대상으로 얻어진 이론을 일반 현상으로 여긴다는 문제점을 지닌다. 그 결과 상식이나 격언에는 일관성이 없다. 즉, 서로 모순되는 상식이 늘 함께 존재한다. 이를테면 '아는 것이 힘이다' - '모르는 것이 약이다'. '안 보면 정이 멀어진다' - 안 보면 애틋한 마음이 더욱 강해진다' , · '쥐구멍에 별들날 있다' 개꼬리 삼 년 가야 황소 꼬리 안 된다' , '아랫사람은 위엄으로 다스려야 한다' - 아랫사람은 자애로써 다스려야 한다' , '작은 고추가 맵다' 생강은 묶어야 제 맛이다' 등에서 확연히 볼 수 있다. 이에 반해서 사회심리학자들은 편파 된 표본을 기피하고 대표적인 표본을 구하려 노력한 다. 따라서 상식이 보이는 모순은 공존할 수가 없다. 있다면 이는 해결되어야 할 좋은 연구과제가 될 것이다. 상식이 맞는 경우가 많지만, 특히 사후 분석에서 잘 들어맞는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실제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가 많이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두 번째로, 상식의 경우는 관찰자의 동기, 바람, 정서상태 등이 관찰된 자료를 해석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방치함으로써 객관성을 상실한다. '이현령 비현령'이라는 경구는 이러한 현상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스스로가 그러한 자료해석을 하면서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회심리학자의 자료수집과 해석이 항상 객관성을 띠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이를테면, 자료수집의 대상이 주로 백인 중류층 대학생이었다는 비판을 강하게 받고 있다. 이는 정당한 비판이며 연구결과의 일반화에서 늘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비판의 존재가 바로 과학적 연구의 특징이고, 체계적인 연구들은 편파성이 개입될 조그마한 가능성까지 따져서 이를 배제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는 상식을 동원하여 사건의 발생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발생한 후에 설명을 한다. 사건이 발생한 후에 보면, 마치 발생할 수밖에는 없었던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이는 특히 그 사건이 우연적 사건이 아닌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이회창 두 후보가 접전을 벌이는 중에는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것인지 누구도 몰랐으며, 김대중 후보의 가능성을 확신하지 못하였지만, 당선이 되자 많은 정치분석가들은 그가 당선될 수밖에 없었던 다양한 설명들을 제기하며, 당선될 줄 알았다는 식의 설명을 제시하였다. 입영을 앞둔 친구가 당신에게 자신의 연인과 멀리 떨어져 지내게 되어 두 사람 사이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묻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아마도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그렇게 지내다가 1년 후에 사이가 멀어져 절교했다거나, 1년 후에 결혼을 결심했다고 하면, 어느 경우이건 당신은 설명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고, 나아가서 그 경우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진작 생각했다고 여길 것이다. 소개되는 많은 연구결과를 보면서 그 결과를 설명하는데 아무 문제를 못 느끼고, 이미 알고 있던 것이라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나중에 시험문제를 받는다면 이것도 저것도 모두 정답일 것 같은 혼란에 빠지기 쉽다. '진작 알았었어(1-knew-it-all-along) 혹은 '되돌아보기 편향' 현상은 사회심리학의 발견들을 상식으로 여기게끔 만들며, 아울러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예견력을 과대평가하는 자부심을 가져올 수 있다. 또한 남이 실책을 저질렀을 경우에는 그 실책을 미리 예견하지 못한 우매함을 책망하게 만든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벌린 전쟁에서 미국은 막강한 화력을 동원하여 기선을 제압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막상 공격을 시작하기 전에는 누구도 그 작전이 쉽게 성공하리라 예측하지 못하였다. 오진으로 환자가 죽었을 경우에 의사는 사인을 밝히고 나면, 어떠한 조치를 했으면 죽지 않았을 것을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단을 내리는 상황에서는 이렇게 쉽게 죽으리라는 것을 생각조차 못했음을 생각하지 못한다. 지금은 명명백백한 것으로 보이는 것도 전에는 전혀 예측하기 어려웠음을 생각하지 못한다.
왜 연구를 하는가?
이론검증 및 개발 모든 과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현상을 설명하는 타당한 이론을 개발하는 데 있다. 타당한 이론은 세상을 이해하고, 적응해가며, 예측하는 것을 도와준다. 그래서 Lewin은 "좋은 이론처럼 실용적인 것은 없다." 고 강조한다. 이론이 없다면 현상은 지리멸렬하게 느껴지며, 불가해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이론이 간결함에도 불구하고 복잡 다양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면 더욱 가치가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가 그 대표적인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모든 과학자들은 그러한 이론을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사회심리학 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까지의 연구성과를 본다면 이전에 제기된 대이론은 인간의 다양한 행위를 다루는데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구체성이 없어 검증이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나 과학적 이론으로는 부적합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회심리학자들은 대이론 대신에 사회적 행위의 중요 측면, 중요 영역에 설명을 제한하는 중이론들을 개발해 왔다. 이를테면, 학자들이 제시하는 자아, 공격행위, 태도변화 등의 이론들은 그 영역에만 적용이 국한되는 이론들이다. 이들 중이론들은 적용 영역이 넓지는 못하지만 그 타당성이 검증 가능하다는 구체성을 지니고 있다. 한 가지 예로 '책임감 분산 이론'을 보자. 이 이론은 남을 돕는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서 제안된 것인데, 위급한 상황을 목격한 사람이 여럿이라면 혼자인 경우보다 각자가 느끼는 책임감이 줄어들어 돕는 행위가 나타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남을 도울 수 있는 상황을 실험실에서 꾸며 놓고 이 이론을 검증한 결과 타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이론을 유사한 상황에 적용시킨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연구가설을 도출할 수 있다.
① 어떤 과제를 수행할 때 혼자 하는 것이 다른 사람과 같이 하는 경우보다 더욱 책임감 있게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② 사람들은 작업지시를 들을때 혼자 듣는 경우가 동료와 같이 듣는 경우보다 더 주의해서 들을 것이다. 이런 가설들은 적절한 상황 설정을 통해서 그 진위를 검증할 수가 있다. 검증 결과에 따라 책임감 분산 이론의 적용 영역을 확대시킬 수도 있고 또는 제한할 수도 있다. 하나의 일반이론으로부터 연구가설을 도출하여 이를 검증하는 것은 이론의 평가를 위한 중요한 작업이며 많은 연구들이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수행된다. 물론, 이러한 중이론들을 통합적으로 꿰는 대이론이 출현할 수 있다. 심리학자들은 대이론의 후보로 여겨지는 이론들을 끝없이 모색하고 엄밀하게 검증하는 노력을 보이고 있으며 비교적 최근에 제기된 집단주의-개인주의 이론은 좋은 후보로 여겨지고 있다. 기술 물리학처럼 안정된 자연현상을 다루는 자연과학과는 달리 사회 과학에서 다루는 현상은 변화가 많으며, 심리학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내면의 상태를 다루는 경우에는 더욱 변화가 심하다. 예를 들어, '한국사람들이 술자리가 잦은 것은 심정을 주고받기 위함이다.'는 주장을 보자. 이 주장의 진위를 알아보고자 한다면 우선 일상의 의사소통 양상에서 심정 소통이 어떠한 양상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심정 소통이라고 여겨지는 상황들을 수집하고, 정의하고, 사람들의 판단을 구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사회현상에 대하여는 비단 문화 차이뿐 아니라, 성차, 계층 간의 차이가 존재할 수 있고, 게다가 개인 차이마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연구의 첫 단계에서 사회심리학자들은 관찰하고자 하는 현상이 얼마나 신뢰롭게 나타나는 것 이냐 하는 점에 주목한다. 체계적이지 못한 관찰에 의존한다 면 현상은 지리멸렬하게 느껴질 뿐이다. 따라서 현상의 체계적인 관찰을 통해 명확하게 어떤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지를 기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단계이며 그 자체가 좋은 연구주제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 단계의 중요성이 간과되어 왔다. 지역감정의 존재를 언론에서 이야기할 때 기자들은 자신들이 목격한 사실을 가지고 그럴듯하게 일반화를 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때 듣는 사람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감정을 인정할 수도 있고 정치기자들의 쓸데없는 입담으로 냉소해 버릴 수도 있다. 어떠한 경우이건 그 정보는 개인의 경험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지역감정의 존재에 대한 어떤 적절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무엇을 지역감정으로 볼 수 있으며, 그 현상은 얼마나 신뢰롭게 관찰되고 있는가, 어떠한 사람들에게서 주로 나타나고 있는가 등의 양상을 파악해 내는 것은 이론 개발에 선행되어야 하는 중요한 연구과 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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