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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심리학

사회심리학 성립

by 꿀도비 2022. 9. 24.

사회심리학은 어떻게 성립되었나? 

사회심리학의 역사를 처음으로 정리한 G. Allport(1954)는 사회심리학이 제1차 세계 대전과 뒤이은 대공황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사회의 격변 속에서 사회현상들을 이해하려는 심리학자들의 노력으로 모습을 갖추었다고 본다. 현대 사회심리학의 틀에 토대를 제공한 선구적 사상은 유럽과 미국 사회에서 이미 19세기에 제시된 사상과 이론들이다. 유럽의 지성사에서 콩트의 실증 주의적 접근, 다윈의 진화론적 접근을 사회현상의 이해에 적용하는 시각이, 프랑스의 르봉, 뒤르캠 같은 이들이 집단, 군집현상에 대하여 내놓은 이론 그리고 독일의 분트 같은 이가 언어와 문화에 대하여 구상하던 생각들이 한데 어울리며, 사회심리학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미국에서는 제임스가 1890년에 내놓은 심리학의 원리에서 사회적 자아를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복수의 현상으로 제시하였고, 비슷한 시기에 Baldwin은 개인 심리학마저도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는 개인 자체가 사회적 산물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 같은 이론적 주장이 제기되던 시점에 최초의 사회심리학적 실증 연구가 Triplett(1897)에 의해 행해졌다. 그는 자전거 경주 시합에서 선수들이 혼자 연습할 때보다 훨씬 향상된 기록을 보인다는 사실을 주목하고 타인의 존재가 개인의 수행에 미치는 영향력을 조사하기 위하여 간단 한 실험을 수행하였다. 아이들에게 낚시 릴을 주고서 낚싯줄을 최대한 빨리  감는 일을 시켰다. 어떤 아이는 이 일을 혼자서 하였고 다른 아이들은 두 명씩 짝 지은 다음에 각자가 수행하도록 하였다. 두 가지 조건의 결과를 비교하니 짝 지은 조건에서 훨씬 빨리 감아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사회 촉진 현상). 이 연구는 뚜렷한 이론적인 틀 속에서 행해진 것은 아니지만, 사회심리학적 변인을 최초로 조작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후의 사회심리학 연구의 최초 모형을 제공하였다. 즉 즉각적인 사회 상황이 인간의 행위에 미치는 영향력을 최초로 실험적으로 분석했다는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분트와 사회심리학 현대 심리학의 비조라고 인정받는 독일의 빌헬름 분트(W. Wundt)는 최초의 심리학 실험실을 만들어서 구조주의(Structuralism) 학파라는 심리학적 접근법을 제시하였고 심리학의 연구를 위해 실험적 방법을 채택하고 파급시킨 공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분트는 실험적 접근이 인간 정신을 이해하는데 지닌 한계를 인식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의 사고가 언어, 관습, 신화 등에 의해 큰 영향을 받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1900년부터 근 20년 간에 걸쳐서 오늘날의 인류학과 사회학 영역의 연구에 해당하는「민족 심리학 (Völkerpsychologie)」 10권을 저술해 내었다. 이 분야는 실험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 아니라 심리를 형성하는 역사적, 국가적, 문화적 특성을 분석하는 심리학이다. 이 분야에의 관심은 분트 생존 시대에 독일의 철학자들이 사회를 대중의 문화, 국가 공동체로서 취급하고, 그 공동체의 정신, 혹은 얼(Völk)이 성원들을 결속하는 이데아로 보았던 사조를 반영 한다.(Graumann,1988). 분트는 인간과 공동체의 이해가 인간 심리를 이해하는 중요한 부분이며, 이러한 이해가 결여된 실험심리학은 심리학의 반쪽일 뿐이라고 보았다(Farr, 1996). 분트는 인간의 사회성을 이해하기 위하여 인간의 사회적 교류의 객관적 산물인 언어, 신화, 관습을 비교 역사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오늘날 문화인류학적 접근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분트는 심리학 연구를 위해 실험적 접근법을 제시했지만, 민족 심리학을 위한 심리학자의 구미에 맞는 적절한 방법론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사회심리학자들이 분트가 민족 심리의 연구에는 적절치 못하다고 본 실험법을 주된 방법론으로 채택하면서 분트의 접근은 오늘날의 사회심리학 연구경향과는 많은 차이를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사회심리학의 역사에서 분트는 도외시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문화가 사회심리학의 중요한 변수로 부각되자 분트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기울어지고 있다. 사회학과의 분리 이러한 배경에서 1908년 두 가지의 사회심리학 개론서가 최초로 미국에서 출판되었다. 그 하나는 맥두갈이 저술한 것으로 진화론을 받아들여 사회적 행위를 본능론적 관점에서 설명함으로써 개인 심리학적인 접근을 취한 것이다. 그는 나중에「집단정신(Group mind)」을 저술하여(1920), 마치 분트가 그러했듯이 개개인의 차원을 넘어선 사회의 실체를 인정하는 사회학적 접근을 포용하는 입장을 취했다. 다른 하나는 사회학자인 로스에 의하여 쓰였는데 타인의 영향력이 초래하는 행위의 동질성을 강조하였다. 초기 사회심리학의 연구가 진전되는데 큰 영향을 준 것은 1920년대를 전후하여 심리학계에 세게 닥친 행동주의이다. 즉 사회심리학이 과학으로써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행동을 측정하는 정확한 방법을 개발하고 그 행동의 변화를 야기하는 사회적 상황의 영향력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이를 실험적으로 조작해 연구하는 실험적 방법론의 채택이 절실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행동주의의 영향은 특히 미국에서 강했으며 1924년에 F. Allport가 저술한「사회심리 학」 교재는 탐구 대상을 개인에게 맞추고, 실험적 접근을 주된 방법으로 채택하였으며, 태도를 측정하는 척도의 개발에 중점을 둠으로써 사회학적 접근과의 결별을 보이고 있다. 특히, 태도와 같은 무형의 것을 측정할 수 있다는 Thurstone의 연구가 제시된 1928년 이후, 태도의 연구는 사회심리학의 가시적 주제가 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군인들의 사기 진작, 정치 및 군사상의 선전효과에 대한 실제적인 관심사와 맞물려 사회심리학의 발전에 중요한 자취를 남기며, 이후로도 가장 중요한 주제의 하나로 다루어지게 되었다. 심리학자들이 전개하고 있는 사회심리학과는 별개로 분트에게서 수학한 경험이 있는 시카고 대학의 철학과 교수 G. H. Mead가 사회심리학 강좌를 운영한 것이 그의 사후 사회학자들에 의해 전개된 사회심리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인간을 탐구함에 있어서 마음과 몸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탈피하고(이 점에서 그는 분트와 다름), 인간의 행동에서 내적인 생리 현상과 외적인 발현을 구분할 수 없다고 보았다. Mead는 인간의 대화에 주목하여, 사람들이 생각한다는 것은 상징적 언어를 이용하며, 이 생각은 개인 안에서 혼자 이루어지는 것 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과정이라고 보았다. 사람들은 생각을 하기 위해서 말을 이용할 뿐 아니라, 말은 상대방과 동시에 스스로에게 들리기 때문에 (자기반추적) 말을 하면서 상대방의 관점을 취하고, 이를 자의식에 의해서 분석하고 조정해 가는 사회적 교류에 들어가는 것이다. 마음이란 생각을 떠날 수 없고 생각은 언어적 상징과 이의 교류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그의 사상은 사회학자인 Blumer 등에 의하여 계승되어 상징적 상호작용 학파를 형성하게 되었다. 초기부터 사회심리학은 각기 다른 두 방향(심리학과 사회학)에서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학문으로 상정되었다. 두 접근 간의 교류 가능성이 큼에도 불구하고 별 교류 없이 단절된 상태로 사회심리학은 발전되어 왔다. 그 분야의 연구성과를 집약하여 편집 출판하는 편람의 출판 작업도 나중에는 각 분야에서 별도로 진행시키는 정도로 분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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