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on이나 Sellars 등의 과학철학자들은 우리들의 관찰이 이론의 존적 (theory-laden) 임을 지적한다. 우리가 접하는 현상의 객관적 실체는 있지만, 이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우리가 지닌 신념, 이론, 가치라는 렌즈를 통해서 그 현상을 파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론이 다를 경우에 우리는 전혀 다른 현실을 경험하는 것이다. 똑같은 우주를 관찰하면서, 천동설과 대치되는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는 당시 받아들여지고 있던 프토레미의 우주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현상을 대하는 사람들이 지닌 믿음이 현상의 파악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를 살펴보자. 신념과 선입견의 영향 Kulechov 효과 러시아의 영화감독인 Kulechov는 사람들의 사전기대에 의해 같은 장면에 대한 해석이 크게 달라지는 현상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영화를 제작하였다고 한다. 이를테면, 그는 무표정한 남자의 얼굴을 보여주기 전에 죽은 여인을 보여주거나, 여자아이가 노는 것을 보여 주거나, 수프 한 그릇을 보여주면, 그 남자의 얼굴이 각기 이전에 무엇을 관객이 보았느냐에 따라 슬프게, 행복한 혹은 사색에 빠진 것으로 지각되는 것을 촬영에 이용한 것이다. 사람들이 낯선 대상을 접하는 경우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나 도식들을 적용시킨다는 것은 잘 알려진 심리학의 원리이다. 똑같은 대상도 어떠한 선입견을 가졌는가에 따라 다르게 파악된다. 대부분의 심리학 개론 책에서 지각 현상을 설명할 때에 가역성 도형의 예가 제시되고 있는데, 이 예들은 어떠한 관점을 취하는가에 따라 대상인식이 달라지는 것을 잘 보여 준다. 좀 더 친근한 예를 많이 들 수 있다. 집단수용소에서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온갖 생의학 실험을 저지른 사람이 있다. 그의 얼굴에서 차디찬 냉기와 사람들을 비웃는 듯한 눈초리를 읽을 수 있는데 그 사람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에 대항한 저항운동가로 수천 명의 유태인을 구해낸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자 그의 인간애가 넘치는 눈과 여유 있는 듯한 입가의 미소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Rothbart와 Birrell은 오레곤 대학생을 대상으로 바로 이 같은 결과를 발견했다. Lord, Ross와 Lepper는 우리들이 가진 신념이 제시된 증거들을 왜곡시키는 현상을 흥미 있게 보여주었다. 스탠퍼드 대학생들에게 사형 판결에 대한 의견을 물어서 찬성자와 반대자를 구분하였고 이들에게 최근에 나타난 사형 판결의 효과에 관한 두 가지 연구결과를 설명해 주었다. 한 연구는 사형 판결이 범죄의 억제 효과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다른 연구는 그러한 효과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찬성하는 사람이나 반대하는 사람이나 자신의 생각을 지지하는 결과를 보여준 연구에서는 "역시, 그렇겠지"라는 식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연구결과가 자신의 생각과 반대되었을 경우에는 비판적이며,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연구가 잘못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결과적으로는 두 가지 모순되는 증거를 제시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입장에 따라 자신들이 기존에 지니고 있던 생각을 더욱 강화시켜준 것으로 나타났다. 신념의 집요성 우리가 지닌 신념이 잘못된 것이었을 때 쉽사리 그 신념을 털어버릴 수 있다면 문제는 덜 심각하다. 그러나 일단 받아들인 신념은 놀라울 정도로 오래 지속된다. Anderson, Lepper와 Ross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소방수에 대한 사례를 보여주었다. 한 집단에게는 모험심이 많은 사람이 소방수로서 적합함을 보여주는 사례를 제시하고, 다른 집단에게는 오히려 조심스러운 사람이 적격임을 보여주는 사례를 제시하였다. 사례 제시가 끝나고 참가자들로 하여금 왜 모험심이 강한 사람이 소방수로 더욱 적합한지를 나름대로 설명하는 글을 쓰게 하였다. 이는 원래 제시된 정보를 바탕으로 하나의 이론(신념)을 형성, 갖추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들에게 처 음에 제시해준 사례가 극히 예외적인 사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려 주었지만 사람들이 믿게 된 신념은 이러한 정보에 의해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 결과는 우리가 지니게 된 신념, 이론을 잘 검토하고 나름의 논리를 갖추게 되면 그 신념에 반대되는 정보를 많이 접해도 신념의 변화는 잘 나타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복잡한 현상을 설명함에 있어서 과잉 단순화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일단 사건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설명을 하나 갖게 되면 다른 설 명의 타당성을 깎아내는 경향이 있다. 우리들은 새로운 사실에 접해서 우리가 갖고 있는 이론을 변경시키기보다는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신념에 맞추어서 새로운 사실을 소화해 내는 경향이 강하며, 우리의 기존 생각에 걸맞은 정보들을 회상해 내기가 쉽다. 인간이 지닌 정보처리의 중요한 특징은 매우 보수적이라는 것이다. 정보의 수집 사람들은 객관적 판단을 요하는 경우에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게 되는데, 이러한 정보는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고 논리학에서는 가르친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우리는 치우친 정보를 모색하는 경향이 있는데 특히 사전 기대를 갖고 있을 때 그러하다. 예를 들어, 대학가에 널리 퍼져 있는 ▲▲ 대생들은 텁텁하고 촌스럽다"는 가설을 보자. 이 가설의 진위를 판단하기 위해 당신은 ▲▲ 대학에 가서 알아보고자 한다. 원칙적으로 본다면 당신은 되도록이면 많은 ▲▲ 대생들을 무작위로 만나서 그들 중 텁텁하고 촌스런 사람들의 수를 세어서 그들이 차지하는 비율을 갖고 진위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거의 없다. 당신은 아마도 대학 구내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몇몇 사람을 만나서 그에게서 촌스러운 면을 발견하려고 애쓸 것이고, 허름한 주점을 찾아가서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수를 세거나, 당구장에 가서 촌스럽게 옷을 입은 사람들을 발견하는 등 지니고 있는 가설에 부합하는 사례들을 수집하고 그 수가 어느 정도 되느냐에 따라 가설을 검증하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사회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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